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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동아] 조규진 교수, 근육로봇의 탄생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01-12
조회
2153
로봇을 한번 떠올려 보자. 사람처럼 뚜벅뚜벅 걷는 휴머노이드, 강물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로봇, 지그재그로 기어가는 뱀로봇 등 가지각색의 로봇이 생각난다. 혹시 문어처럼 흐느적거리는 로봇을 상상한 독자가 있는지. 최근 문어 같은 연체동물은 물론이고 벼룩로봇, 식물을 닮은 로봇 등 새로운 형태의 로봇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모양은 물론 움직임도 실제 생물과 똑같다는데. 로봇공학자들은 왜 이런 형태의 로봇을 만드는 걸까.



어항 안에 페트병을 떨어뜨렸다. 하얀 문어다리가 다가오더니 페트병을 부드럽게 감싸 안는다. 먹이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챈 걸까, 문어는 다시 다리를 스르륵 풀었다. 카메라가 어항 전체를 비추자 문어 다리 끝에 붙은 제어장치가 드러났다.



“뭐야, 이거 진짜 문어가 아니네?”



영상 속 주인공은 로봇이었다. 하지만 말랑말랑한 표면은 물론 흐느적거리는 움직임이 분명 문어다. 로봇이 어떻게 이렇게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 걸까. 다양한 생체모방로봇을 개발하고 있는 조규진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를 찾아갔다.





■문어로봇의 탄생



“아, 문어로봇이요? 다리 속에 줄을 넣어서 움직이는 겁니다.”

조 교수는 문어로봇을 잘 알고 있었다. 이름은 ‘옥토봇’. 이탈리아 피사 산타나고등연구원의 세실리아 라치 교수팀과 유럽의 여러 연구팀이 공동으로 개발 중이다. 아직 문어다리를 2개밖에 만들지 못했지만 2년 안에 8개를 모두 완성할 예정이다.

문어로봇은 분명 뭔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스스로 꿈틀꿈틀 움직이는 소재나 부드러운 모터처럼 새로운 기술 말이다. 하지만 설명대로라면 인형 속에 손을 넣고 움직이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기자는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단순한 구조지만 문어로봇의 구조는 문어다리와 꽤 비슷하다. 실제 문어다리에는 중앙을 길게 가로질러 신경이 하나 놓여 있다. 이 신경을 둘러싼 형태로 근육이 붙어 있는데, 신경이 움직이는 대로 근육이 따라 움직인다. 문어로봇은 신경 대신 가운데 강철 줄을 넣고 이를 부드러운 실리콘으로 감싼 것이다.

이런 구조 때문에 문어로봇은 문어처럼 움직일 수 있다. 강철 줄을 잡아당기면 다리가 줄어들고, 줄을 놓으면 다리가 다시 길게 늘어난다. 문어가 앞으로 갈 때 다리를 늘였다 줄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 강철 줄을 이리저리 흔들면 실리콘 다리가 따라 움직인다. 문어가 몸을 닦고 피부를 빗질할 때 다리를 이리저리 흔드는 것과 같은 행동이다. 결과만 놓고 보면 ‘그걸 누가 못해’ 하는 말이 나올 정도로 쉽지만, 생물의 해부도를 보고 로봇을 만든다는 아이디어를 내기는 어렵다. 게다가 문어 같은 연체동물을 로봇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더욱 기발하다. 이런 것을 ‘콜럼버스의 달걀’이라고 하는 건가 보다.

문어로봇의 움직임이 빛을 발할 때는 물건을 쥘 때다. 문어가 먹이를 먹을 때처럼 부드러운 다리로 물체를 꼭 조이는데, 이때 물체와 다리 사이에 틈이 생기지 않아 물체가 빠져 나가지 않는다. 특히 유리 같이 깨지기 쉬운 것을 들 때 부드럽게 잡고 놓을 수 있어 더욱 좋다.

문어로봇을 만든 연구팀은 이 문어로봇을 수술용 로봇으로 개발할 계획이다. 부드럽고 유연해 몸속을 편안히 지나갈 수 있어 지금 쓰는 로봇보다 몸속 조직과 장기에 손상을 덜 주기 때문이다. 또 아예 나노크기로 만들어 몸속에 넣으면 이 로봇이 몸속을 헤엄쳐 다니며 온몸 구석구석을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로봇, 벼룩처럼 뛰다



생물의 움직임을 따라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단순해 보이는 문어다리라도 그 안에는 조이는 근육, 펴는 근육 등 여러 근육이 있다. 문어로봇은 아직 문어의 모든 근육의 움직임을 따라하는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얼마 전 조 교수팀은 벼룩 뒷다리 근육의 움직임을 그대로 재현한 로봇을 만들었다. 상자 모양에 긴 뒷다리가 나 있는 모양이다. 크기는 500원짜리 동전만 하다. 작다는 것 외에 별다를 것이 없어 보지만 로봇에 전류를 흘려주면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 마치 장대높이뛰기를 하듯 제자리에서 풀쩍 뛰어 오른다. 제 몸의 30배가 넘는 높이다.

“우연히 이 사진을 보고 로봇을 개발하게 됐죠.”

조 교수가 화면에 커다란 사진을 보여줬다. 벼룩의 해부도였다. 외워야 할 것 같은 근육 이름이 잔뜩 쓰여 있다. “이 해부도를 기계 관점에서 보면 재밌어요. 에너지를 저장하고 방출하는데 벼룩 뒷다리만큼 효율적인 게 없습니다. 1967년에 나온 논문인데 아직 아무도 이 속에 숨겨진 원리를 로봇으로 구현하지는 못했죠.”

벼룩 뒷다리에는 세 종류의 근육이 있다. 펴는 근육과 접는 근육, 방아쇠 근육이다. 평소에는 벼룩의 다리가 접힌 상태다. 펴는 근육이 다리를 접는 방향으로 힘을 가해 에너지는 접는 근육에 모여 있다. 접는 근육 바로 옆에는 방아쇠 근육이 연결돼 있다. 이 방아쇠 근육을 살짝 당기면 순간 모멘트의 방향이 반대로 바뀐다. 힘이 다시 펴는 근육으로 들어가 벼룩은 다리를 쭉 편다. 이 방식으로 벼룩은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제 몸길이의 100배나 되는 높이를 뛸 수 있다.

조 교수는 이 움직임을 본떠 로봇을 제작했다. 뒷다리 근육의 재료로 선택한 것은 형상기억합금 스프링. 니켈과 티타늄, 구리 같은 금속을 일정 비율로 섞어 만든 것으로 다른 모양으로 변형시키더라도 열을 가하면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재료다. 이 재료로 세 가지 근육을 만들어 벼룩의 해부도대로 연결했다. 근육 위에 가벼운 복합재로 몸체를 만들고 몸체 안에 전류를 흘릴 수 있는 구리 회로를 넣었다.

구리 회로에 전류를 주자 접는 근육 스프링이 수축하며 벼룩로봇은 뒷다리를 접었다. 이 상태에서 펴는 근육 스프링에 에너지를 줘도 스프링은 펴지지 않는다. 하지만 방아쇠 근육 스프링을 수축시키면 펴는 근육 스프링의 위치가 바뀌며 모멘트의 방향도 따라 변한다. 이때 벼룩 로봇은 다리를 쭉 펴고 뛰어 오른다.

이 로봇은 장애물이 많은 험한 지형을 정찰하는 데 적합하다. 기어가거나 바퀴로 움직이는 로봇은 커다란 바위를 만나면 무용지물이 되기 일쑤지만, 벼룩로봇은 장애물을 쉽게 뛰어 넘을 수 있다. 벼룩로봇에 센서를 달면 환경오염 지역이나 외계행성의 대기환경을 분석하는 데 활용할 수도 있다.

벼룩로봇이 개발되기 전에도 높이 뛸 수 있는 로봇은 많이 개발됐다. 지난 2008년 스위스 로잔연방기술연구소(EPFL)의 다리오 플로레아노 교수팀은 몸길이의 27배를 뛰는 메뚜기로봇을 선보였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개발한 점프로봇도 제 몸의 17배나 뛰어오른다. 하지만 이들은 생김새만 다를 뿐 속은 일반 로봇과 같다. 모터를 돌려 스프링을 압축했다가 푸는 것이다. 이 로봇을 뛰게 하려면 엄청난 에너지로 모터를 감아줘야 한다. 하지만 조 교수가 개발한 벼룩로봇은 에너지를 내는 데 큰 힘이 필요 없다.

“생물은 환경에 잘 적응하도록 진화했다고 하잖아요. 생물을 모방하면 로봇의 움직임을 더 효과적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저는 로봇공학자지만 생물학 논문을 많이 읽죠.”





■파리 안에 답이 있다



조 교수는 “자연에는 정말 신기한 것이 많다”고 말을 이었다.

“자벌레 아시죠? 움직이는 거 보세요. 기어가다가 방향을 마음대로 바꾸고, 구를 수도 있고 게다가 똑바로 서기까지 하죠. 지금 로봇 기술은 그 작은 자벌레도 따라할 수가 없어요.”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기 위해 요즘은 겉모양을 따라하는데서 벗어나 생물이 움직이는 원리를 조사하고 그 내부 구조를 따라하려는 연구가 활발하다. 생물의 내부를 흉내 내는 것은 초소형 비행로봇을 개발할 때 진가를 발휘했다. 초소형 비행로봇의 모델은 바로 ‘파리’. 크기가 작을 뿐 아니라 생물학적 연구도 많이 돼 있기 때문이다.

UC버클리의 론 피어링 교수팀은 압전소자를 이용한 엑추에이터로 파리의 움직임을 재현했다. 파리는 공중에 떠 있을 수도 있고 재빨리 방향을 바꾸는 등 다양한 비행을 할 수 있다. 파리의 날개가 아래위로 움직이면서 동시에 회전하기 때문이다. 이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 하려면 한쪽 날개에 엑추에이터가 2개씩 필요하다. 엑추에이터 하나는 아래 위로 움직이게 조절하고, 하나를 더 붙이면 회전까지 조절 할 수 있다. 문제는 무게였다. 작은 파리에 엑추에이터가 무려 4개나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 무게 때문에 파리로봇은 결국 날지 못했다.

하지만 미국 하버드대의 로버트 우드 교수팀이 개발한 파리로봇은 비행에 성공했다. 우드 교수팀은 다른 전략을 취했다. 파리가 움직임을 만드는 원리는 물론 그 내부에 주목한 것이다. 파리는 등에 큰 근육이 하나 붙어있다. 이 등 근육이 움직이며 날개를 펄럭이고 다른 작은 근육은 방향과 미세한 움직임을 조절한다. 우드 교수팀은 로봇 등에 큰 근육 역할을 하는 액추에이터를 하나 붙였다.

이 액추에이터가 움직이며 양 날개를 움직이고 나머지 연결 부분은 바람의 방향에 따라 마음대로 움직이도록 유연한 재료로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파리로봇의 무게는 불과 0.056g, 날개의 길이도 2cm 밖에 되지 않는다.

조 교수가 박사후 연구원이던 시절, 이 연구실에서 파리 로봇을 개발하는 데 참여했다. 이때 조 교수는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려면 새로운 제조 방식과 새로운 재료, 새로운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파리지옥로봇의 선물



로봇 공학자들이 연구하는 생물은 동물에 국한되지 않는다. 식물의 움직임을 흉내내기도 한다. 특히 파리가 앉으면 잎을 닫아버리는 파리지옥이 인기다. 과학자들이 파리지옥에 관심을 갖는 것은 잎이 닫히는 속도 때문이다. 파리지옥의 잎이 닫히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0.1초. 어떻게 파리 지옥은 이렇게 움직일 수 있을까.

미국 하버드대의 라크슈미나라야난 마하데반 교수는 파리지옥의 잎이 빨리 닫히는 것은 잎의 구조적 특성 때문이라고 밝혔다. 잎을 이루는 섬유질은 총 세 겹으로 이뤄져 있다. 그 중 맨 위와 아랫면의 섬유질은 세로 방향으로 배열돼 있다. 이 양쪽 섬유질이 힘의 균형을 이뤄 상황에 따라 닫힌 형태와 열린 형태, 두 형태가 가능하다. 이렇게 하나의 구조가 두 가지 형상을 가지는 성질을 ‘쌍안정성’이라고 한다. 평소엔 늘어나 있던 바깥쪽 섬유질의 장력으로 잎이 밖으로 벌어져 있다가 파리가 잎에 앉으면 잎의 힘 균형이 순식간에 무너지며 안쪽 섬유질의 장력으로 잎이 닫힌다. 머리를 고정할 때 쓰는 똑딱핀을 생각하면 쉽다. 한쪽으로 구부러져 있지만 볼록하게 튀어나온 부분에 손을 갖다 대는 순간 반대편으로 '탁' 휘어지는 것이다. 이 연구 결과는 ‘네이처’ 2005년 1월 27일자에 실렸다.

우연히 조 교수는 실제 파리지옥처럼 쌍안정성을 가진 소재를 알게 됐다. 탄소섬유를 연구하는 같은 학교 조맹효 교수와 융합연구를 하면서다. 소재를 이루는 탄소가 한 층은 가로로, 다른 층은 세로로 연결돼 있다. 이 소재로 두 잎을 만들고 두 잎 사이는 형상기억합금 스프링으로 연결했다. 이 형상기억합금 스프링은 힘의 균형을 무너뜨려 잎의 형상이 다른 형상으로 변할 수 있게 만든다. 이렇게 만든 파리지옥로봇도 잎의 모양이 바깥으로 벌어진 형태에서 안으로 오그라드는 모양으로 순식간에 바뀐다.

“파리지옥 로봇을 어디에 쓸 수 있냐고요? 로봇 자체보다는 로봇의 소재를 이용할 생각입니다.”

파리지옥을 만드는 데 쓴 재료로 인공근육을 개발할 수 있다. 기존 인공근육 중 반응속도가 가장 빠르기 때문에 눈꺼풀이나 표정을 나타내는 얼굴 근육으로도 쓸 수 있다. 안면마비 환자에게 웃음을 찾아줄 수 있는 기술인 것이다.

“우리가 새로운 형태의 로봇을 만드는 이유는 여기 있습니다. 로봇을 만들 때마다 우리 생활에 도움이 되는 기술이 새로 나오기 때문이죠. 앞으로도 계속 이런 로봇을 만들 생각입니다.”





출판일: 2012년 1월

신선미 기자(vamie@donga.com)





원문 링크:

http://science.dongascience.com/articleviews/article-view?acIdx=11289&acCode=4&year=2012&month=01&pag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