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뉴스

[과학동아]이우일 학장,“남 배려하는 따뜻한 학생 뽑겠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01-12
조회
1879

“남 배려하는 따뜻한 학생 뽑겠다”

특별기획 I | 서울대 공대 이우일 학장 인터뷰 발행일 : 2012년 1월



2011년 9월 발표된 QS 세계대학평가에 따르면 서울대 공학 분야는 학계 평판에서 세계 33위를 차지했다. 2020년 20위를 목표로 치열하게 달려가고 있는 서울대 공대의 이우일 신임학장을 만나 비전을 들어봤다.



“서울대 공대는 공부만 잘하는 사람보다는 생각이 자유로운 학생, 그리고 남을 배려하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춘 학생을 뽑고 싶습니다.”

지난 9월 서울대 공대 학장에 취임한 이우일 기계항공공학과 교수(57)에게 원하는 신입생의 모습을 물었더니 “공부만 잘하는 학생은 더 이상 공대에 필요 없다”고 강조했다. 처음 만났을 때 큰 키가 예사롭지 않더니 역시 학창시절 조정으로 전국대회에서 은메달까지 딴 스포츠맨이었다. 하지만 1시간 넘게 인터뷰를 하고 나니 ‘마음씨 좋은 과학기술 선비’ 이미지가 더 그럴듯했다.



창업가 정신 키우겠다



학장으로 취임하고 가장 고민하신 것은 무엇인가요?



“서울대 공대에는 이미 2020비전이 있습니다. 2020년에 세계 20위의 명문 공대가 된다는 거지요. 여기에 덧붙일 게 하나 있습니다. 서울대를 비롯해 카이스트나 포스텍 등 최고 공대의 모습은 거의 비슷합니다. 연구를 많이 하고 논문을 많이 쓰는 거지요. 하지만 서울대 공대라면 도전적인 창업가 정신이 추가로 필요한데 이런 부분의 교육은 부족합니다. 공대 나오면 교수, 연구원, 대기업만 생각하는데 그것이 전부는 아니지요.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같은 사람도 나와야 하는데…, 두 사람은 대학을 중퇴했으니까 역할모델이 안되나요?”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생각하고 있나요?



“창업하라고 강요하려는 건 아닙니다. 창업이라는 좋은 길도 있고 창업하려면 이런 게 필요하다는 걸 알려주는 거지요. 그런 지식과 경험은 대기업에 가도 필요하거든요. 우선 창업가 센터를 만들어 교육하고 멘토도 모시려고 합니다. 먼저 체계적으로 교육을 시키고, 실제로 창업에 도전해 보겠다는 친구들에게는 멘토를 붙일 겁니다. 저희 공대에 애정을 가진 성공하신 기업가들이 많습니다. 그 분들을 멘토로 모시려고 하는데 기꺼이 허락을 해주시리라 생각합니다.”



창의성 교육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맞아요. 창의성을 키워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창의성 교육은 그걸 전담하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서울대 공대의 어떤 전공필수 강의는 학생이 100명이 넘습니다. 아무리 교수가 의욕이 넘치고 능력이 있어도 이런 환경에서는 창의성을 키울 수가 없습니다. 미국 스탠포드대의 D스쿨이나 MIT의 미디어랩처럼 창의적인 융합 교육 과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사회에 봉사하는 서울대생



학생들을 보면서 안타까웠을 때도 많았을 텐데요.




“다들 최고의 학생인데 들어와서 방황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그런 학생들을 위해 맞춤형 교육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거의 대부분 교수가 강의하면 받아적고 시험을 보는 거지요. 학생들이 아이디어를 내서 무엇을 만드는 과정은 드뭅니다. 이런 환경을 내버려두면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제가 강조하는 것은 대학은 연구기관이기 이전에 교육기관이라는 겁니다. 이게 요즘 뒤바뀐 것 같아요. 교육은 등한시되곤 합니다. 교육이 논문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일부에서는 서울대 공대생의 자퇴 비율이 높다고 지적합니다. 이 문제는 학교와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합니다. 자퇴생의 대부분은 법학이나 의학을 전공하려고 합니다. 그쪽이 지금은 직업의 안정성도 좋고 소득도 높지요. 하지만 이공계 학생들에게 다양한 기회와 비전을 보여준다면 달라질 수 있어요. 그 중 하나가 창업이지요. 정해진 틀 안에서 정형화된 직장생활을 해야 하는 의사나 변호사보다 창업이 훨씬 역동적이고 보람도 높지 않겠어요?”



서울대 공대를 졸업한 학생이 어떤 모습이길 기대합니까.



“학과 공부만 잘하고 과학기술 지식만 있는 사람이라면 곤란하지 않겠어요? 서울대 공대 졸업생은 이 사회의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사회에 비전을 제시하고 봉사할 의무가 있지요. 제가 창업가정신, 창의성과 함께 강조하는 것이 봉사입니다. 마음이 따뜻해야죠. 그래서 재학생부터 여러 가지 봉사하는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합니다. 먼저 저개발 국가를 생각해볼까요. 그들에게는 첨단기술보다 오히려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을 윤택하게 해주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땅에 굴리며 갖고 다니는 커다란 물통 사진 본 적 있죠? 그런 게 바로 적정기술입니다(서울대 공대는 12월 2일 적정기술 컨퍼런스를 열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다른 방향의 접근이 필요하죠. 서울대가 있는 관악구와 협력해 공부방을 지원하는 것도 좋은 예입니다. 이처럼 사회적 약자를 돕는 기술을 소셜 테크놀로지라고도 하죠. 어쨌든 서울대 공대생은 전공 공부만 해서는 안됩니다.”



요즘 인문학을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맞아요. 공대생도 인문학과 예술을 알아야 합니다. 기업의 CEO들이 최근 인문학이나 예술을 많이 강조해요. 제품 개발이나 기업 경영에도 필요하지만 선진국 경영인과 이야기할 때도 중요합니다. 그들과 기술 이야기, 경영 이야기만 할 수는 없어요. 예술 작품 이야기도 해야 하고 인문학 토론도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제품에 대한 신뢰를 줄 수 없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우리 공대도 미대와 협력해 흥미로운 강의를 준 비하고 있습니다. 하나가 ‘0’의 예술성과 무한성의 개념을 이용해 작품을 창작해 보는 것이지요.”





서울대가 뽑고 싶은 신입생



서울대는 1월 16일에 정시 논술시험을 치릅니다. 어떤 신입생을 뽑고 싶습니까.



“일단 서울대에 입학하려면 학업성적이 우수해야겠죠. 하지만 학업성적만으론 부족합니다. 공부만 하고 편협된 생각에 빠진 사람들은 이제 공학을 하기 어렵습니다. 공학이 얼마나 다양한 생각이 필요한데요. 공학을 하려면 생각이 넓어야 합니다. 전 세 가지 요소를 가장 중요하게 봅니다. 자유로운 생각, 균형잡힌 시각 그리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입니다.”



서울대가 앞으로 수시에서 80%를 뽑기로 해 화제가 됐습니다. 서울대 입시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까요.



“제가 공대 학장이지만 제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대답하기가 어렵네요. 대학마다 본고사는 부활시키지 않겠지만 다양한 선발방식을 만들 겁니다. 수능은 예전의 예비고사 성격으로 바뀔 거고 이미 바뀌고 있지요.



개인 의견이지만 공대만 놓고 보면 면접의 비중이 커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면접은 좀 짧아요. 면접을 훨씬 길게 보고 더 깊이 봐야 합니다. 지금 30분쯤 면접을 보는데 한 시간 정도로 늘리고 세 번 정도 봐서 여러 면을 보고 싶어요.”


공대생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호기심이죠. 뭔가가 궁금해야 돼요. 궁금하면 찾아보고 조금 더 알아보고, 그러다 밤도 지새워 봐야죠. 어떤 학생들은 호기심이 없어요. 수학 문제 던져주면 깔끔하게 풀어오는데 더 가지 않죠. 호기심이 넘치는 학생이라면 의대보다 공대가 좋아요.”





조정과의 인연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까요? 학장님은 기계공학과 72학번입니다. 왜 공대를 가셨나요?



“전 인문사회 쪽은 아니었어요. 전형적인 이공계 학생이었죠. 당시는 의대가 지금처럼 인기가 없어서 공대 중하위권 정도였어요. 집이나 학교에서 의대 가라는 압력이 전혀 없었죠. 물리가 좋아서 물리학과도 생각했는데 수학 문제를 푸는 것보다는 뭔가 만들고 부수고 그런 걸 좋아했어요. 시계도 좀 부쉈고요. 중학교때 라디오도 만들어봤는데 좀 별로였어요. 전기나 전자공학은 눈에 보이지 않잖아요. 전 기계처럼 뭔가 보이는 게 좋았어요. 그래서 서울대 기계공학과에 갔죠.”



키가 무척 크신대요. 운동 잘 하셨겠습니다.




“대학교때 조정 선수였어요. 김도연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전 서울대 공대 학장)이 당시 같은 학교 3학년이었는데 신입생 환영회 때 날 보더니 좋은 게 있다고 조정부로 꼬시더라고. 바로 배 타는 줄 알았는데 체력 키워야 한다며 엄청 뛰었어요. 덕분에 전국대회에서 은메달을 땄죠. 그때만 해도 진짜 선수가 없었으니까.



조정은 묘한 매력이 있어요. 단체 운동이 다 열심히 해야 하지만 조정은 특히 내가 조금만 게을리 하면 전체가 끝장나요.”



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은 무엇인가요.



“남 부끄럽지 않게 살자. 심지어는 폭력배 영화에도 그런 이야기들이 나오잖아요. 영화와 다른 의미기는 하지만 이게 굉장히 중요해요. 제가 바른생활 사나이는 아니에요. 하지만 남에게 창피할 행동은 안하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