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뉴스
[김윤영 석좌교수 인터뷰] 챗GPT도 놀란 韓공학자 “아이언맨처럼 집에서 로봇 만드는 시대 옵니다”
챗GPT도 놀란 韓공학자 “아이언맨처럼 집에서 로봇 만드는 시대 옵니다”
[아무튼주말] ‘계산공학의 노벨상’수상
서울대 김윤영 석좌교수
김윤영(65) 서울대 기계공학부 석좌교수는 요즘 인공지능(AI) 학계에서 ‘챗GPT’보다 더 뜨거운 관심을 받는 공학자다. 챗GPT의 한계를 넘어선 차세대 AI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냈기 때문이다. ‘챗GPT’는 사용자가 채팅 창에 질문을 입력하면 AI가 대화하듯 문장으로 답을 알려주는 서비스. 지난해 12월 출시와 동시에 구글·네이버가 장악한 전 세계 검색 시장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한계도 있었다. 온라인에 있는 자료를 모아 가공하기 때문에 창의적인 답을 내놓지 못한다. 잘못된 답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김윤영 서울대 석좌교수는 원하는 기능의 기계를 맞춤형으로 설계해주는 AI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 AI로 모터 1개만으로 착용자의 앞뒤 움직임뿐 아니라 좌우까지 힘을 보조해주는 외골격 로봇을 만들었다. 기존 로봇보다 가벼우면서 한결 부드러운 움직임을 가능하게 한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반면 김 교수가 개발한 AI 기술은 세상에 없던 답도 척척 내놓는다. 그가 개발한 AI 기술의 정식 명칭은 ‘컴퓨터를 이용한 기계 장치를 자율적으로 설계하는 기술’. 풀어서 말하면 사용자가 원하는 기계 장치의 구조와 기능 조건을 컴퓨터에 입력하면 AI가 스스로 판단해 수분 만에 해당 조건에 맞는 기계의 설계도를 뚝딱 내놓는 기술이다.
이 기술의 가장 큰 강점은 기존 데이터 학습 없이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기계를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계단을 안정적으로 올라갈 수 있는 바퀴를 설계해줘’라고 요구하면 챗GPT는 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반면, 김 교수의 자율 설계 기술 AI는 바퀴 면이 세 방향으로 갈라지는 ‘변형 바퀴’ 설계도를 보여주는 식이다.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챗GPT보다 진일보한 AI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개념의 AI 프로그램은 2000년대 들어 가정용 로봇 개발 붐이 일면서 미국, 유럽, 일본 유수 대학·연구소에서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김 교수가 사실상 세계 최초로 이 분야 원천 기술을 손에 넣은 것이다.
김 교수는 독보적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최근 ‘계산공학 분야의 노벨상’이라는 일본 계산공학회 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계산공학은 고성능 컴퓨터로 복잡한 공학 계산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학문으로, 수많은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는 것이 관건인 AI 분야 핵심 기술. 그동안 미국, 유럽 대학 출신이 이 상을 독식해왔는데 아시아 학자로는 김 교수가 처음으로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김 교수는 “미·유럽이 주도해오던 AI 분야에서 한국이 퍼스트 무버(개척자)가 될 가능성을 보여준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무엇이든 설계해주는 ‘만능 AI’
-’기계 장치 자율 설계 기술’이라는 용어가 어렵다. 구체적으로 어떤 기술인가.
“간단히 말해 움직이는 모든 기계 장치를 사용자 요구에 맞게 컴퓨터가 자동으로 설계해 주는 기술이다. 자동차 와이퍼를 만들려면 그 안에 모터를 몇 개 넣고, 와이퍼 속도를 제어하는 장치를 어떻게 배치할지 고려해야 한다. 와이퍼 내부 부품을 어떻게 연결하고, 어떤 구조로 만들어야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 스스로 알아내는 기술이다.”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데 AI 기술까지 필요한가.
“자동차에 들어가는 기계 설계는 현재 기술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문제는 로봇 같은 4차 산업혁명 기술은 구조가 더 복잡하기 때문에 사람 머리만으로는 효율적인 기계를 설계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로봇 팔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엔지니어가 로봇 팔의 조인트(관절)를 셋으로 할지 넷으로 할지 직접 시제품을 만들어 테스트해봐야 결정할 수 있다. 시간도 수개월 걸리고 사람 생각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같은 연구를 자율 설계 기술로는 몇 분 만에 끝낼 수 있다.”
-AI 기술로 기계를 설계한 사례가 있나.
“차세대 외골격 로봇을 개발 중이다. 사람이 직접 착용하는 기계 개발이 가장 까다롭다. 삼성전자나 일본의 사이버다인 등 현재 개발된 외골격 로봇은 착용자가 앞뒤로 움직이는 방향으로만 힘을 보조한다. 사람이 걸으려면 좌우로도 힘을 줘야 하는데 현재 외골격 로봇은 이런 기능이 없어 로봇 착용자가 양손에 지팡이를 짚으면서 걸어야 한다. 좌우 힘까지 보조하려면 좌우 방향으로 힘을 내는 별도 모터가 양 다리에 하나씩 더 장착돼야 하는데 그럴 경우 장치가 너무 커지고, 배터리 문제도 생겨 만들지 못했다. 내 연구실에선 모터 하나로 착용자의 신체 앞뒤뿐 아니라 좌우까지 힘을 보조해주는 외골격 로봇 시제품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달부터 실제 사람을 대상으로 성능 테스트를 하고 있다.”
-자율 설계 기술의 원리가 무엇인가.
“요즘 화제가 되는 챗GPT와 비교하면 이해가 쉽다. 챗GPT는 이미 나온 내용은 기막히게 정리한다. 그런데 거기까지다. 공기 저항에 최적인 자동차 디자인을 알려달라고 하면 이미 나온 자동차 기계 사진은 찾아준다.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데에는 활용하기 어렵다. ‘자율 설계 기술’은 챗GPT와 달리 기존 데이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종전 설계 문법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오로지 기본적 물리 법칙에 따라 작동 가능한 기계를 자동으로 설계해준다.”
-어느 정도 수준까지 기술이 개발됐나.
“자율 설계 기술은 올해 거의 완성될 예정이다. 향후에는 챗GPT처럼 기계공학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는 일반 사용자도 ‘이러이러한 기능의 로봇을 설계해줘’라고 주문하면 설계도를 만들어주는 서비스로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미래 일이겠지만 이 기술이 더 발전하면 영화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처럼 AI에 말로 주문하며 원하는 형태로 로봇을 만드는 시대도 올 수 있다.”
김윤영 교수가 바퀴면이 세 개로 분할되는 ‘변형 바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상식을 넘어 다른 시각에서 새 분야 개척
김윤영은 원래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전공하지 않은 데다, 정통 로봇 공학자도 아니다. 스스로를 “박사 때 했던 연구분야를 확 넓혀 다른 분야를 전통적인 관점과는 다른 나만의 관점으로 바라봄으로서 새로운 학문 분야를 개척할 수 있었다”라고 소개했다. 2011년엔 자신이 개발한 AI 프로그램으로 추상화를 그려 미술 전시회를 열고, 서울대 로고를 변형한 디자인으로 서울대 기념품을 제작하기도 했다.
-원래 전공 분야는 무엇이었나.“기계공학 중에서도 자동차 차체 구조 설계를 오랫동안 연구했다. 어느 부분에 힘이 가해지면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분석해서 차체를 어떻게 설계해야 구조적으로 안정되는지를 연구하는 분야였다. 그러다가 지난 2007년부터는 움직이는 기계를 설계하는 기술 개발을 시작했다.”
-교수가 갑자기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새로운 학문을 개척하고 싶은 욕망이 컸다. 움직이는 기계를 컴퓨터가 자동으로 설계하는 ‘자율 설계 기술’은 아무도 성공한 적이 없어서 참고할 선행 연구가 없었고, 자동차 차체와 달리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아 까다로웠다. 처음엔 논문 한 편 쓰는 데 7년이 걸렸다. 미국, 유럽 공학자들도 자율 설계 기술 개발을 시도했다가 모두 포기했다.”
-어떻게 연구 성과를 냈나.
“작년 11월 부산에서 열린 세계적 권위의 국제 로봇 학술 대회에서 ‘자율 설계 기술’을 발표했다. 발표 이후 로봇 전공 교수들뿐 아니라 유럽 항공사인 에어버스와 삼성전자, 현대차 등 글로벌 기업에서도 내 연구 결과를 활용해보고 싶다고 제안했다. 내가 로봇 전공자들보다 뛰어나서라기보다 다른 분야의 연구 경력 덕분에 학자들이 종전에 보지 못한 시각으로 접근한 게 성공 비결 같다. 실제 생활에서 남의 집 담을 넘는 일은 위험하지만 학문 세계에서는 자유롭게 넘나드는 게 창의적 시각을 넓혀주는 듯하다.”
◇공대 수업에서 그림 동화책 보여주는 교수님
김윤영은 서울대 학생들 사이에서 ‘동화책 교수님’으로 통한다. 학생들 상상력을 키워주기 위해 수업 시간에 그림 동화책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동화책을 손수 쓴 작가이기도 하다. 2004년엔 동화책 ‘우면산의 비밀’을 써서 MBC 창작동화대상에서 장편 동화 대상을 받았다. 전국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전염병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주인공 남매가 ‘면역초’라는 풀을 찾아 우면산에 갔다가 지하 세계로 빨려 들어가 모험을 한다는 SF 장르의 동화다.
-학생들에겐 왜 그림책을 보여주나.
“우리 연구실 신조가 ‘연구해서 남 주자’이다. 공학을 하는 엔지니어는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성과를 내야 하는데 그러려면 창의성이 생명이다. 전공 책에만 파묻혀선 패스트 팔로어(추격자)밖에 되지 못한다.”
-다 큰 성인들에게 그림책이 효과가 있나.
“그림책을 수업에 활용하게 된 건 그림책 평론가인 아내 영향이 크다. 아내 도움을 받아서 좋은 메시지를 담은 동화책들을 소개했다.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데이비드 맥페일의 ‘세상을 바꾼 두더지’를 보여주면 모두가 감동한다. 동화에는 땅속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하는 두더지가 나오는데 군인이 그 음악에 감화돼 전쟁을 끝낸다. 두더지는 자신의 연주가 세상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모르고 한다. 지금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AI 산업을 이끄는 창업가들도 누가 뭐라든 스스로 좋아하던 걸 꾸준히 한 사람들이다.”
-동화책을 직접 쓴 과정도 재미있던데.
“아들과 딸이 어릴 때 잠들기 전마다 내가 꾸며낸 공상과학 동화를 들려줬다. 판타지에 과학적 지식이 들어간 얘기라 아이들이 재밌어했는데 그중 하나가 ‘우면산의 비밀’이었다. 지인들 사이에선 전염병을 다룬 ‘우면산의 비밀’이 코로나를 예견했다고 소소하게 화제가 된 적이 있다.(웃음)”
◇“세계 1위 기술 없는 한국 바꾸고 싶다”
김윤영 교수는 내년 서울대 교수직에서 정년 퇴임한다. 연구 성과가 알려지면서 최근 미국 유수 대학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다. 하지만 김윤영은 “외국에 가기보다 국내에 남아 오랫동안 간직해온 다른 꿈을 실현해보고 싶다”고 했다. 이공계 지원 재단을 꾸려 자기처럼 세계 최초 기술을 개발하는 창의적 연구에 투자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공계 재단에서 어떤 사업을 하려는 건가.
“한국이 제품으로는 세계 1위가 많지만 ‘기술 1위’는 없다. 원천기술이 약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처음으로 세계 1등을 만든 건 BTS라고 생각한다. 세계인이 한국말로 된 BTS 노래를 따라 하지 않나.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BTS처럼 우리만의 창의적 연구를 해야 한다고 본다. 다만 국내에서는 당장 성과를 내기 어려운 연구는 지원받기 어렵다. 기업가들을 만나면서 연구자들이 새로운 걸 만들 수 있는 지원 체제를 모색하고 있다.”
-이공계 재단을 생각하게 된 계기는?
“AI의 기본이 되는 컴퓨터 프로그램 코딩에 필요한 컴퓨터 언어는 모두 미국, 유럽에서 만들었다. 블록체인, 양자 컴퓨터 등 첨단 기술을 주도하는 것도 모두 미국에서 시작됐다. ‘우리는 왜 이런 새로운 판을 못 짤까’ 하는 의문에서 창의적 연구를 지원하는 이공계 재단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K팝, K드라마가 인기인데 K테크가 없으라는 법 있나.”
-연구 환경을 어떻게 바꾸고 싶은가.
“.우리는 수능이 대표하는 입시 위주 교육 때문에 창의성이 말살된다. 천재가 있어도 제대로 키우지 못하기 때문에 대학부터 바뀌어야 한다. 새로운 기술과 창의성은 서로 다른 학문이 만나는 융합 과정에서 나온다. 하지만 어떻게 만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은 미국에서 하는 방식을 주로 따라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학자/연구자들에게 맞는 새로운 연구방식, 연구체계가 있어야 세계 최고의 기술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장은 결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이런 새로운 연구 방식과 체계가 자리잡으면 분명 우리 나라가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개발할 날이 올 것으로 믿는다. 즉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정신을 현대에 이어가는 것이다.”
챗GPT도 놀란 韓공학자 “아이언맨처럼 집에서 로봇 만드는 시대 옵니다” - 조선일보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