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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교수, 식물 "속 읽기" 범위 넓힌다

작성자
이수빈
작성일
2023-03-07
조회
831

美나파벨리 포도나무에 한국 반도체칩?…식물 “속 읽기” 범위 넓힌다

 “물이 풍족하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식물은 결핍이 있어야 더 맛있는 과실을 만들어 냅니다. 스트레스를 만드는 것이 수천 년 농사의 핵심이죠. 이 작은 반도체 칩으로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겁니다.” 

지난 1일 서울 서초구 농원과 사무실에서 만난 이정훈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의 말이다. 그는 기술 유출 우려로 사진은 찍으면 안 된다고 당부하면서도 지난 2015년부터 연구를 통해 개선한 좁쌀 크기(가로 0.5㎜, 세로 0.6㎜, 두께 0.1㎜)의 반도체 칩을 자랑스레 보여줬다. 사무실에는 3일 미국으로 향할 예정이라는 반도체 모듈들이 쌓여 있었다.

이 반도체 칩은 식물의 줄기나 나뭇가지에 꽂아 수분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사용된다. 식물의 광합성 등 영양분 흡수 상황을 분석해 식물 성장에 필수적인 양의 물만 공급하도록 돕는다. 15분마다 무선 데이터 송신이 이뤄진다. 반도체 칩이 올라간 기판 하나의 가격은 약 1000원으로 하나의 모듈은 반도체 기판 4개로 구성된다. 무선송신기와 배터리까지 포함한 모듈 전체의 원가는 약 15만원 정도다.

이 교수는 “사람으로 치면 혈압과 맥박을 계속 재고 있는 것”이라며 “물의 흐름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변하는지를 살피면 필요한 물의 양 외에도 병충해 감염 여부, 비료 효과 등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17년 서울대와 농촌진흥청 연구과제의 기술개발 결과를 바탕으로 스마트팜 솔루션 벤처회사 ‘텔로팜’을 창업했다. 지금도 사업 지분의 10%는 서울대가 보유 중이다.

이 교수는 먼저 방울토마토를 이용한 연구를 진행했다. 이 기술을 적용해 기른 방울토마토의 당도는 평균인 7~8브릭스(brix)의 2배인 14브릭스를 기록했다. 당도가 높은 과일의 대표 격인 감귤과 복숭아, 멜론 등과 비슷한 수준이다. 당도 외에도 영양 성분과 크기 등 상품성 전반이 개선돼 지난해 12월 국내 유명 백화점에 통상 방울토마토 가격의 4배에 시험 납품해 완판됐다.

지난해부턴 미국 나파 밸리, 소노마 밸리 등 와인 생산지의 와이너리 3~4곳에서 이 기술을 시험 도입했다. 1에이커(약 4046㎡‧1224평)의 땅을 경사도와 일조량 등으로 6구역으로 나눠 각 구역별로 대표 나무 한 그루를 선정해 관리한다. 한 그루의 포도나무에는 4개의 반도체 칩으로 구성된 반도체 모듈 1개와 토양의 수분 수치를 파악하는 매장 모듈 1개가 설치된다.

와인용 포도 생산은 방울토마토 생산보다 더 정밀한 데이터 분석을 필요로 한다. 단순히 더 달콤한 포도를 생산하는 게 아니라, 각 와이너리에서 요구하는 특정 당도는 물론, 과실의 크기까지 맞춰서 포도를 생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원래는 높은 몸값의 전문 생산자들이 수십 년간 익힌 노하우를 통해 이뤄지는 작업이지만, 반도체가 이를 대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올해엔 반도체를 이용한 새 농법을 시험 도입하는 와이너리가 50여곳으로 늘었다. 미국에선 와인용 포도 외에도 아몬드 농장에서도 이 기술을 시험하고 있고, 뉴질랜드에서도 맥주의 원재료인 홉 생산에 도입됐다.

아몬드·홉 농가들이 반도체를 이용한 신기술에 관심을 보이는 건 사용하는 물의 양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캘리포니아는 전 세계 아몬드의 약 80%를 공급하는 최대의 산지인데 2016년 캘리포니아 주 전 지역의 97%가 가뭄권에 들 정도로 물 부족에 고민이 크다. 방울토마토의 경우 기존 농업 대비 물 사용량이 60%가량, 아몬드·홉 농가의 물 사용량이 40%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다른 작물 농가에서도 관심을 갖게 됐다는 게 이정훈 교수의 설명이다. 이 교수는 “지구의 기후 변화로 기존 농업에 종사하던 농부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누구나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시대가 오게 하는 것이 궁극적인 연구의 목표”라고 말했다.



美나파벨리 포도나무에 한국 반도체칩?…식물 “속 읽기” 범위 넓힌다 | 중앙일보 (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