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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조규진 교수, ‘말랑말랑한 로봇’의 시대가 온다

작성자
hjchoi06
작성일
2020-03-23
조회
2107

[조규진의 미래를 묻다] ‘말랑말랑한 로봇’의 시대가 온다


서울대 연구팀이 만든 로봇 스누맥스(SNUMAX). 세계 소프트로봇 경진대회에서 우승한 로봇이다.
바퀴가 변하고, 코끼리 코처럼 자유자재로 휘는 팔이 달렸다.
[영상 서울대 소프트로봇 연구센터, 편집 권혁주 논설위원]



손꼽히는 SF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는 1942년 ‘로봇 3원칙’을 정했다. 최우선 규칙인 제1항은 이렇게 시작한다. ‘로봇은 인간을 해쳐서는 안 된다.’ 여기엔 ‘로봇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배어 있다. 왜 그럴까.

로봇 패러다임의 변화

생명체 같은 유연성, 환경 적응력
금속 로봇으로 구현하기엔 한계
부드러운 재질에 변신까지 가능한
'소프트 로봇'이 대안으로 떠올라


 
우리에게 로봇의 이미지를 심어준 건 철인 28호, 우주 소년 아톰, 마징가 제트, 트랜스포머, 카봇, 메카니멀, 입는(웨어러블) 로봇인 아이언 맨 등등이다. 그게 아니면 산업 현장에서 윙윙 돌아가는 로봇 팔이거나 금속 광택 번쩍이는 인간형 로봇(휴머노이드)이다. 하나같이 연상되는 게 ‘무쇠 팔 무쇠 다리’고 심지어는 ‘로켓 주먹’이다. 사람은 부딪히기만 해도 최소 전치 3~4주는 될 것 같다. 실제 산업현장에서는 사고를 막으려고 로봇 주위에 반드시 울타리를 쳐 사람이 근처에 얼씬도 못 하게 한다.

그런데 정말 로봇은 무쇠 팔 무쇠 다리로 이뤄진 게 전부일까. 그럴 리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 공장의 정해진 자리에서 정해진 동작만 반복하는 산업용 로봇 정도라면 아무래도 상관없다. 하지만 로봇의 쓰임새는 훨씬 다양하다. 온갖 모양의 물건 나르기(물류 로봇), 의료, 재난 현장에서의 탐사와 구조, 집안일….
  
문어의 움직임을 닮은 로봇
 
이런 일들을 제대로 하기에 딱딱한 금속성 로봇은 한계가 있다. 유연성과 적응력이 떨어진다. 재난 구조 현장에서 약간 좁은 틈에 맞닥뜨렸는데 붕괴 위험이 있어 부술 수는 없다면? 사람은 끼듯 들어갈 수 있을 것이나 금속 로봇은 어림없다. 가사 도우미 로봇이 때론 망치질하는 금속 손으로 부드러운 홍시를 터뜨리지 않고 집어 드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하버드대에서 개발한 미니 문어로봇. 화학 반응으로 동력을 얻는다.



그래서 ‘소프트 로봇’이 탄생했다. 간단히 말해 ‘말랑말랑한 로봇’이다. 고무나 부드러운 플라스틱 같은 재질을 사용한다. 움직이는 방식도 기존 로봇과는 다르다. 모터 같은 부품을 쓰면 유연성과 탄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소프트 로봇은 공기압력을 쓰거나, 가느다란 줄을 통해 힘을 전달하는 방식 등을 사용한다(자전거 뒷바퀴 브레이크가 바로 이렇게 줄을 통해 힘을 전한다).

소프트 로봇 개발은 2000년대 중반께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07년 미국 국방부 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켐봇(Chembot)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유연한 재질로 만들어 좁은 틈까지 파고 들어가서는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로봇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이탈리아 산타나대 체칠리아 라스키 교수 연구팀이 만든 문어발 로봇



과학학술지 '네이처'는 2016년 소프트 로봇 특집에서 초기 연구의 대표적인 사례로 이탈리아 산타나대 체칠리아 라스키 교수가 개발한 ‘문어발 로봇’을 소개했다. 문어 다리처럼 이리저리 휘면서 물체를 감아쥐는 로봇이다. 라스키 교수는 실제 아버지에게 부탁해 문어를 잡아서는 움직임을 관찰하며 로봇을 만들었다고 한다.

‘소프트 로봇 집게(gripper)’도 많이 개발됐다. 사람의 손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산업용 로봇 팔 끝에 달린 금속성 집게는 여러 가지 크기와 모양의 물체를 쥐는 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대체로 집어야 하는 부품이 달라지면 그것에 맞게 집게를 교체했다. 달걀처럼 깨지기 쉬운 물건을 집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문제는 집게를 부드러운 물체로 바꾸면 상당 부분 해결된다. 소프트 로봇이 적재적소인 분야다.



서울대 연구진은 종이접기의 원리를 이용해 크기가 변하는 타이어를 만들었다. 그 원리과 제작, 시험 과정을 보여주는 동영상이다. [영상 서울대 소프트로봇 연구센터, 편집 권혁주 논설위원]




필자의 연구진은 ‘크기가 변하는 바퀴’를 만들었다. 동굴 탐사 로봇이나, 곳곳이 무너져 내린 건물 안에서 생존자를 찾아다니는 바퀴 달린 로봇을 생각해 보자. 바퀴가 커다란 오프 로드(off-road) SUV의 축소판을 떠올리면 된다. 가다가 동굴 천장이 갑자기 낮아졌다거나, 천장 일부가 내려앉은 곳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스로 바퀴 크기를 줄여 몸체 높이를 낮추는 게 솔루션일 것이다.

연구진은 이걸 구현하는 데 종이접기 원리를 도입했다. 실제 종이접기 학원에 다니면서 노하우를 배워 지름이 변하는 공을 접었다. 이를 바탕으로 바퀴 크기가 변하는 로봇을 만들어 국제 소프트 로봇 경진대회에 나갔다. 이걸 본 국내 타이어 업체가 광고에 변신 타이어를 쓰고 싶다고 해 1t 무게를 버틸 수 있는 변신 타이어를 만들기도 했다.


실제 '크리가 변하는 바퀴'를 사용해 만든 한국타이어 광고.



 
웨어러블 로봇에도 소프트 로봇 기술을 적용하려는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아무리 천하장사로 만들어준다지만, 아이언맨 갑옷 같은 것을 입고 거리를 버젓이 걸어 다닐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두툼한 금속 보조기를 몸 일부에 착용하는 것도 별로들 반기지 않을 것 같다. ‘나는 몸이 불편하다’고 티를 내는 것이니까. 최상은 옷 같은 웨어러블 로봇일 것이다. 남들 보기엔 그저 옷을 입었을 뿐인데, 불편한 신체를 보완해 주고 힘은 강해지는 로봇이다. 마치 청룽(成龍)이 주연한 영화 '턱시도'에서 처럼.

한 때 "그게 로봇이냐" 타박받기도

필자 연구팀은 이런 맥락에서 ‘로봇 장갑’을 만들어 계속 개선하고 있다. 시작은 2009년 초였다. 밥을 떠먹여 주는 로봇을 개발하려고 양팔이 불편한 분을 인터뷰했다. 그분은 이렇게 말했다. “떠먹여 주는 것은 싫다. 내 손으로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충격이었다. 생각을 바꿨다. 떠먹이는 로봇 대신, 끼면 손이 움직일 수 있는, 부드러운 플라스틱(폴리머)으로 된 로봇 장갑을 개발하게 됐다.



서울대 연구진이 개발한 부드러운 로봇 장갑. 맨손으로는 무언가를 잡기 힘들어하는 사람도 물건을 집어 들고, 문손잡이를 돌릴 수 있다. [영상 서울대 소프트로봇 연구센터]




 
2000년대 후반 처음 소프트 로봇을 연구할 때, “그게 로봇이냐” 소리를 많이 들었다. 이젠 소프트 로봇이 주류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젠 반대로 "그게 소프트 로봇이냐"는 식의 타박도 가끔 들린다. 움직이는 방식은 소프트 로봇을 닮았지만 몸체엔 여전히 금속성이 많은, 약간은 어정쩡한 로봇을 놓고 하는 소리다.

그러나 ‘말랑말랑한가, 딱딱한가’만 가지고 소프트 로봇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소프트 로봇은 ‘로봇’이란 패러다임의 변화다. 로봇이 굳이 움직이는 관절과 움직이지 않는 딱딱한 부분으로 나뉘어야만 하는지, 틀을 깨는 유연한 생각이 소프트 로봇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소프트 로봇의 구분도 보다 유연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 유연한 생각이 유연한 로봇, 그리고 유연한 혁신을 만든다.
 



진짜 소금쟁이처럼 수면에서 점프하는 소금쟁이 로봇. [영상 서울대 소프트로봇 연구센터]




조규진 교수=바퀴 크기가 변하는 로봇 ‘스누맥스(SNUMAX)’를 2016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로보 소프트 그랜드 챌린지’에 출품해 우승했다. 서울대에서 학ㆍ석사,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이며 ‘인간중심 소프트 로봇 연구센터’ 센터장이다.



소금쟁이 로봇은 어디에 쓰일까?




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쇼(CES)’에 참여했다. 서울대가 참여 대상을 정했는데, 처음엔 과연 나가도 되는지 반신반의였다. 그동안 미디어를 통해서 접한 CES는 당장 팔 수 있는 첨단 제품을 전시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내보일 건 제품화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기술이었다.

크기가 변하는 바퀴, 무게 28g밖에 안 되지만 12㎏을 버틸 수 있는 로봇 팔, 허리 부상을 막아주는 조끼 모양 웨어러블 기구 등을 전시했다.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몰라 스스로 ‘더미(쓸모없는) 솔루션’이라고 부른 기술들이었다.

뜻밖에 관심을 끌었다. 스타트업을 키우는 액셀러레이터도 찾아와 이것저것 묻고는 좋은 평가를 줬다. 그때 깨달았다. 신제품, 혁신 제품은 한가지 기술로 탄생하지 않는다. 이런저런 기술이 엮여야 나온다. CES는 그런 가능성을 가진 실험실 수준의 여러 기술을 선보이는 자리다. 언제 어떻게 다른 기술과 엮여 혁신을 일으킬지 모를 기술들이다. 기술을 꿰는 전문가들이 전시한 연구 결과들을 돌아보며 혁신으로 재탄생할 가능성을 엿보는 자리가 CES였다. 그러니 언제 어떻게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해서 스스로 ‘더미 기술’이라고 어깨를 늘어뜨릴 필요는 없었다.

필자의 연구진은 소금쟁이 로봇을 만든 적이 있다. 소금쟁이처럼 물 위에서 점프할 수 있는 미니 로봇이다. 가열하면 움츠러드는 금속을 이용해 소금쟁이의 점프를 재현했다. 결과는 '사이언스'에 실렸다. CES에 전시했던 가벼운 로봇 팔은 ‘드론에 적용하면 되지 않을까’ 얼른 생각이 떠오르지만, 소금쟁이 로봇 기술은 대체 어디에 어떻게 써먹을 수 있을지 필자도 도무지 모르겠다. 그래도 분명한 건, 언젠가 다른 기술과 융합해 혁신 제품으로 탈바꿈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사실이다.




[출처: 중앙일보] [조규진의 미래를 묻다] ‘말랑말랑한 로봇’의 시대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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