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뉴스

박희재 교수 - [문화일보] “환란때 나라에 보탬되려 창업… 첫 수출대금 1달러, 아직 보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10-30
조회
1074


▲ 박희재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가 지난 17일 신공학관 연구실에서 전공 교재를
넘기며 환하게 웃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박희재 서울대벤처 1교수

 

“논문만 쓰는 대학교수가 아니라 1달러라도 벌어서 나라에 공헌하는 엔지니어가 되고 싶었다.” 박희재(56)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는 회사를 처음 만들게 된 동기를 이같이 설명했다. 박 교수는 표구로 만들어 고이 보관하고 있던 자신의 첫 수출 대금 1달러를 문화일보 취재진에게 보여줬다. 스웨덴의 작은 회사에 정밀 계측 센서를 수출해 번 15000달러( 1700만 원) 중 일부였다. 박 교수는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1달러 표구를 늘 가까이 두고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 순간마다 꺼내본다고 했다. 후배 3명과 함께 시작했던 회사는 이제 300여 명의 직원이 함께하고 있으며 매출액도 1000억 원에 이른다. 20년간 기업가로 지낸 박 교수는 산업통상자원부 연구·개발(R&D) 전략기획단 단장을 지냈고, 청년희망재단 이사장 등 각종 협회장까지 섭렵한 인물로 꼽힌다. 지난 17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신공학관에서 박 교수를 만나 그의 경험과 경제 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박 교수는 서울대 내 벤처 1호 교수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외환 위기로 나라 경제가 한참 어려웠던 1998년 창업했다. 하필 경제가 어려울 때 회사를 만든 이유를 묻자 박 교수는당시 처음으로 논문을 쓰는 것과 강의만으로는 나라에 큰 보탬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수출보다 수입이 많아 무역 적자가 누적된 걸 알게 됐고 공학이 현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만큼 나라도 나서 직접 수출을 해서 돈을 벌어와야겠다고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가지고 있던 기술 하나를 상용화해 수출하면서 조금이나마 국가 빚을 갚는 데 도움이 되고 싶었다그때부터 글로만 표현된 기술이 아니라 현장에서 실제로 쓸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관심을 가졌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회사를 만들기 전에 냈던 논문과 특허를 바탕으로 쉽게 창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창업을 위한 각종 규제에 부딪혔던 것. 지금은 사라진 최소 자본금 규정을 충족하기 위해 박 교수는 퇴직금을 담보로 돈을 대출했고 부족한 금액을 구하려 동료 교수들의 연구실 문을 일일이 두드렸다. 또 대학교수가 사적 이익을 취할 수 없었기 때문에 창업을 하기 위해서는 제자들과 후배들 이름을 빌려서 대표로 등록해야만 했다. 학교 연구실은 사업자 등록을 받지 못해 사무실을 구하려 시간을 허비하기도 했다. 박 교수는 이 같은 규제를 없애기 위해 당시 청와대와 총리실·정부 각 부처 등에 청원을 넣었다. 그의 노력 덕에 결국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대학교수의 겸직을 허용하고 학교 내 기업 설립이 가능하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박 교수는과거와 비교해 규제가 상당 부분 없어지기는 했지만 지금도 창업자들을 얽매는 규제가 많다국가 안보에 해가 되는 게 아니라면 모든 규제를 풀고 자유롭게 창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경험 때문일까. 한국에서 창업이 활성화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창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일이라고 박 교수는 강조했다. 박 교수는창업을 하기 위해서는 기술·마케팅·자금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함께 필요하다어느 것 하나가 부족하면 창업은 성공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그는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연결해주는 온·오프라인의 공간 즉 생태계를 구성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런 생태계는 자생적으로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에 처음에는 정부가 생태계 조성을 하고 자리를 잡을 때까지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박 교수는 중국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리는 광둥(廣東)성 남부 도시 선전()을 예로 들었다. 이곳에는 풍부한 기술 인력과 공장은 물론 금융기관과 투자 기관 그리고 창업 인큐베이터들이 모여 창업 생태계를 잘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아이디어만 갖고 있으면 투자를 받고 필요한 분야의 전문가를 구하는 게 어렵지 않은 일이다. 박 교수는선전도 처음에는 정부가 대학 캠퍼스를 의도적으로 짓게 하는 등의 개입이 있었지만 지금은 자생적으로 돌아가면서 중국의 수많은 창업자를 이끄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선전에서는 창업을 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이 직접 현장에서 뛰면서 글로벌 비즈니스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다 배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최우선적인 요건으로 혁신을 강조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매일매일 새로운 기술과 상품이 등장하기 때문에 현재에 안주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다. 박 교수는 처음 회사를 창업해 정밀 계측 센서를 개발한 이후 액정표시장치(LCD) 측정 장비 사업에 뛰어들었고, 이 분야에서 세계 1위에 도달하자 또다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유기 증착 장비 사업에 도전했다. 당시 LCD 측정 장비 시장은 더 이상 커지기보다 안정기에 접어들었지만 OLED 사업은 여전히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박 교수는기업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움직여야 한다어제의 성공이 오늘의 실패로 이어질 수 있어 성장 동력을 끊임없이 발굴하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이 성공하는 기업가의 자질이라고 강조했다.

 

혁신적인 기업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그 토대가 되는 대학의 변화도 중요하다고 박 교수는 말한다. 그는대학이 글로벌 대학 순위에만 연연하며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실제 생활에서 활용할 수 없는 기술은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 현실과 상관없이 논문과 연구에만 몰두하는 일에서 벗어나 학문과 기업이 유기적으로 연계돼야 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외국의 경우 강소 기업들이 이공계 박사 인력을 절반 가까이 확보해 매일매일 기술 진보를 이루고 있는 반면 한국은 이공계 박사 인력의 약 84%가 대학과 연구소에 몰려 있는 현실에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16% 정도만 기업에서 근무하고 있고 그중 중소기업은 5% 정도에 불과하다. 그는우리나라의 유능한 인재 대다수가 대학에서 논문에만 몰두하는 현실이 계속될 경우 기업 경쟁력은 제자리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학 변화의 출발점에 대해 박 교수는산학 협력이라고 지적했다.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고 있는 기업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현실을 파악하고 대학은 그에 맞는 인재를 키워낼 수 있다는 점에서다. 산학 협력은 기업이 혁신에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게 하고 동시에 청년들에게는 취업의 기회를 제공하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를 낼 수 있다. 중소기업의 경우 신입 사원을 뽑아 1∼2년씩 교육할 여력이 없어 준비된 인재가 필요하다. 박 교수는 그 역할을대학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기업에서 필요한 직무가 무엇인지 알고 그에 맞는 능력을 학생들이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대학의 입장에서도 취업률을 높일 수 있어 긍정적이다. 박 교수는 고용률이 높은 유럽, 특히 독일의 경우 산학 협력이 매우 잘돼 있어 대학 공부와 취업이 매우 자연스럽게 연결돼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박 교수는한국은 대학 4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도 막상 취직하면 쓸 만한 지식이 없는 경우가 많다기업과 대학이 연계해 학생들의 직무 역량을 키워주지 않으면 대학 공부는 따로 하고 취업 준비는 또 돈을 들여 다시 하게 되는 현실을 해결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산학 협력의 모델을 구체화하고 있다. 지역 테크노파크 3곳과 선문대 등 1개 대학이 참여하는산학 협력 청년 일자리 플랫폼 사업이 그중 하나다. 평소 산학 협력을 활발히 하는 교수 30여 명이 기업 관계자들과 함께 학생들을 교육하고 훈련하면서 지난 2월부터 8월까지 6개월 동안 120명을 취업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는산학 협력이 일자리 문제의 해답이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고, 내 생각을 증명할 수 있는 실험을 해보고 싶었다기업의 혁신 인재를 키우는 데 산학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중소기업이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기술을 개발하고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중소기업의 83% 정도가 단 1달러도 수출해보지 않은 내수형 기업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박 교수는우리나라는 시장 자체가 작을 뿐만 아니라 이미 과포화 상태이기 때문에 한정된 시장을 두고 싸우는 것은 무의미하다세계로 기술을 수출하는 기업의 비중을 지금의 17%에서 70%까지 키울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소기업이 목표를 글로벌 시장에 둬야만 비전이 생기고, 인력 확보도 쉬워져 기업 가치를 높이는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는 논지다. 유능한 인재와 기술 개발, 글로벌 시장으로의 진출, 기업 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게 되는 셈이다. 

 

박 교수는 한국의 R&D 지원 사업에 대해연구를 위한 연구, 논문을 위한 논문이 아니라 상품 가치가 있는 기술로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지난해 한국의 공공 및 민간 분야 R&D 투자 규모가 약 66조 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4%에 달해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하지만 사업화 성공률과 기술 경쟁력 평가는 하위권으로 이는 R&D가 실용화 작업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국가 차원에서 기초 연구를 통해 원천 기술을 얻어야만 하는 것은 맞지만 현실에서 기술의 실용성 측면을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박 교수는혁신 역량은 일자리 창출, 경제성장의 선순환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정량적인 논문 게재 수로만 평가하다 보니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기업 경쟁력·산업 경쟁력은 떨어지고 일자리 문제는 심화하는 악순환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기술의 실용화를 위한 고민이 더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강조했다. 

 

R&D 산업단장을 맡았던 박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위원회 및 중소기업벤처부 신설에 대해일자리의 90%가 중소기업에서 비롯되고 중소기업을 키워야 경제가 성장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동시에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이른바풀뿌리 산업혁명을 강조했다. 현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각종 지원 방법 등을 마련한다면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필요로 하지 않는 지원은 결국 세금만 낭비하고 성과를 거두지 못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다. 박 교수는정책을 만들 때 기업의 목소리를 배제하거나 단순히 몇 시간 동안 형식적으로 듣는 방법으로는 현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기업의 의견을 수렴하고 심도 있는 토론을 통해 자꾸 문제와 대안을 모색하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명진 기자 jinieyoon@munhwa.com

 

원문보기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7102501033509317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