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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조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 "나로호 다음은 우주 시장 선점할 세계형 발사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10-04
조회
1376
한경과 맛있는 만남

나로호는 우주로가는 첫 걸음
우리기술로 만든 발사체…2017년께 가질 수 있을 것

연료 비용 절반으로 줄이는 항공등유 사용 엔진 개발
美 벤처 스페이스엑스 롤모델

비용 덜 드는 '똘똘한 엔진'
일본·러시아 따라잡을 기회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D-27. 한국 최초의 우주 발사체(로켓) 나로호 3차 발사까지 남은 시간이다. 나로호의 마지막 도전이다. 1단 로켓 제작을 맡은 러시아와 최대 세 차례까지만 로켓을 공급받기로 계약을 맺어서다. 2009년, 2010년 두 차례 실패에 이은 최종 도전이기에 관계자들 모두 하루하루 기도하는 심정으로 보내고 있다. 사업을 총괄하는 김승조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62)의 마음도 편하지 않을 터. 하지만 김 원장의 표정은 의외로 담담했다. 그는 “마음 속 카운트다운은 작년 원장에 취임하면서 이미 시작됐다”며 “기술적으로 모든 준비를 해온 만큼 마음 편하게 ‘성공하는 거다’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로호는 우주로 가는 첫걸음일 뿐 성패와 관계없이 바로 상업성을 갖춘 세계형(한국형) 발사체 개발에 전력을 투입해야 한다”며 “예산만 충분히 확보한다면 당초 계획(2021년)보다 빠른 2017~2018년께 우리 기술로 만든 발사체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독자기술로 개발하는 발사체에 대해 ‘한국형’보다는 세계 시장에서 통한다는 뜻의 ‘세계형’으로 써달라고 주문했다.

나로호 발사를 이끄는 김 원장을 서울 서초구 불고기집 서초사리원에서 만났다. 이곳은 그가 서울대 교수 재직 시절 외국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자주 찾던 식당이라고 한다. 그는 “불고기를 잘하는 맛집이어서 외국 손님 모두가 좋아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항공우주 분야 최고 전문가다. 서울대 항공공학과(현 기계항공공학부)를 졸업한 그는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미국 텍사스대(오스틴)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로 재직하다 작년 6월 항우연 8대 원장으로 부임했다. 서울대 교수 시절 슈퍼컴퓨터 개발 프로젝트를 주도하는가 하면 수직이착륙이 가능한 헬리콥터인 사이클로콥터 개발에 나서기도 했다. 2009년에는 국내 학자로는 처음 미국항공우주학회(AIAA)가 선정하는 펠로(Fellow)에 뽑혔다.



○2지망 선택한 항공우주가 천직된 인연

서초사리원의 대표 음식은 불고기다. 1930년대 창업한 할머니 고(故) 구분임 씨가 당뇨병으로 고생하는 남편을 위해 설탕을 넣지 않은 불고기 메뉴를 만든 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강원도 횡성에서 직송한 등심 부위를 사용해 고소하면서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었다.

김 원장이 평소 좋아하는 음식은 콩나물국밥. 칼국수, 채소류도 즐겨 먹는다. 그는 “항우연에 와서 직원들과 식사하며 고깃집에 몇 번 갔더니 원장이 고기를 좋아한다고 소문이 났다”며 “원래 고기를 좋아하는 것은 아닌데…”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국내 최고의 항공우주 전문가지만 대학에 진학할 때만 해도 이 길을 가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69학번인 그는 서울대에 지원하며 전자공학과를 택했다. 공부에는 자신이 있어 당연히 합격할 것이라는 생각에 2지망인 항공우주는 아무 생각 없이 결정했다. 그는 “본고사에서 수열 문제의 답을 구하다 괄호를 잘못 쳐 점수가 깎였는데 부분 점수도 받지 못했다”며 “당시에는 충격이었는데 그 인연으로 항공우주의 길을 걷게 됐다”고 말했다.

키 175㎝에 몸무게 70㎏인 김 원장은 나이에 비해 당당한 체격이다. 하지만 수년 전까지 너무 말랐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너는 어깨가 칼날 같다”는 말을 듣곤 했다. 우연히 샤워할 때 물줄기를 때리는 ‘섀도복싱(shadowboxing)’을 하기 시작한 게 건강에 도움이 됐다고 한다.

김 원장은 컴퓨터에도 관심이 많다. 2000년대 초에는 슈퍼컴퓨터를 만들기 위해 스티브 발머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경영자(CEO)에게 직접 소포를 보내 10만달러를 지원받기도 했다. 인텔, 삼성전자까지 직접 찾아다니며 구한 부품을 이용해 당시 세계 56위 계산능력을 가진 슈퍼컴퓨터를 만들었다. 그는 “구조해석이 전공이다 보니 컴퓨터를 이용해 수학을 푸는 수치해석을 많이 다뤘다”며 “컴퓨터는 취미”라고 설명했다.


○나로호는 우주 향한 첫걸음




담백한 불고기 안주에 술잔이 몇 잔 돌자 한 달도 남지 않은 나로호 발사로 화제를 바꿨다. 발사 예정일은 다음달 26일. 항우연은 전라남도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최근 상단부(2단 로켓과 위성) 조립을 마쳤고 추석 연휴가 끝나면 1단 로켓과의 결합도 진행할 예정이다. 김 원장은 “기술적인 걱정은 없다. 그래도 이게 100% 확신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라고 했다.

나로호 사업에는 지난 10년간 8000억원이 넘는 돈이 들어갔다. 연이은 발사 실패에다 가장 중요한 1단 로켓 기술을 러시아에 의존하는 방식이어서 배운 것 없이 러시아의 주머니만 채워줬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원장은 “나로호와 관련해 러시아에 준 돈은 2억달러 정도로 러시아 입장에서 매력적인 사업도 아니고 그들의 작전에 말렸다는 것도 완전히 잘못된 해석”이라며 “모든 나라가 무기가 될 수 있는 기술 이전을 꺼리는 상황에서 러시아와의 기술자문 협력 계약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가 일본에서 기계공업을 배울 때도 기술자들이 눈과 몸으로 익혀 하나씩 발전시켰다”며 “조립부터 발사대 운영까지 로켓 사업 전반을 경험한 것은 수치로 표현하기 힘든 자산”이라고 말했다.




○세계형 발사체 도전


나로호 얘기가 무르익으면서 술잔이 도는 속도도 빨라졌다. 불고기와 함께 주문한 등심도 술안주로는 손색이 없었다. 등심은 불고기와 함께 서초사리원의 대표 메뉴. 조개젓갈로 만든 소스와 함께 먹으면 독특한 풍미의 감칠맛을 느낄 수 있다. 

‘세계형 발사체’. 나로호를 대신해 김 원장이 꺼낸 화두다. 정부는 나로호 후속으로 2021년까지 우리 기술로 ‘한국형 발사체(KSLV-2)’를 개발할 계획이다. 김 원장은 최근 여러 달 고민한 끝에 이 로켓 이름을 세계형 발사체로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그는 “한국형 발사체를 개발한다고 하니 시장성이 부족하다는 일부의 지적이 있다”며 “나로호가 우주를 향한 첫걸음이라면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세계형 발사체를 만드는 게 다음 목표”라고 강조했다.



"과학자들에게 실적 부담줘선 노벨상 기회 안 생겨"


로켓 기술은 1930년대 독일에서 개발하기 시작했다. 1950년대에는 미국, 러시아가 이 기술을 발전시켜 초기 상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만들었다. 일본도 1960년대 미국의 지원을 받아 개발을 시작했다. 선진국들에 비해 50~60년 이상 개발 시기가 뒤진 것. 세계형 발사체는 이런 격차를 만회할 카드라는 게 김 원장의 설명이다. 김 원장은 미국의 우주개발 벤처회사 스페이스엑스를 롤모델로 꼽는다. 지난달 미국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에 자리잡은 이 회사를 직접 방문한 후 세계형 발사체에 대한 확신을 굳혔다고 한다.

스페이스엑스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우주정거장을 만들 재료를 우주로 쏘아 보내주는 계약을 맺고 4억500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이미 40개의 발사 예약을 받는 등 창업 10년 만에 흑자까지 내고 있다. 김 원장이 꼽는 이 회사의 성공 비결은 상업성이다. 스페이스엑스는 기존에 사용해온 수소 엔진 대신 안전하고 비교적 싼 항공 등유(케로신)를 사용하는 엔진을 개발했다. 이렇게 만든 엔진을 9개, 27개씩 묶어 우주공간에 쏘아올린다. 다루기 힘들고 가격도 비싼 수소 연료를 사용하는 일본, 러시아에 비해 비용도 절반밖에 들지 않는다. 그는 “수소로켓을 만들어 놓고 값비싼 제작·발사 비용 때문에 마음 고생하는 일본 등을 따라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예산만 충분히 지원받을 수 있다면 2017~2018년께 우리 기술로 만든 75 규모의 똘똘한 엔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우주산업이 미래 먹거리”




서초사리원의 별미 중 하나는 면이다. 면발을 직접 뽑아 사용해 일반 고깃집에서는 맛볼 수 없는 훌륭한 메밀향을 느낄 수 있다.

김 원장은 30년 뒤 항공우주가 정보기술(IT)에 이어 한국의 희망이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2004년 첫 민간 유인우주선 ‘스페이스십1’을 만든 미국의 버진갤럭틱은 내년 말 관광객들을 태우고 우주여행을 시작할 예정이다. 여행이 시작되면 우주호텔도 필요하고 관련 자재를 우주로 나를 로켓 수요도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게 김 원장의 예상이다. 그는 “인공위성이나 로켓에 들어가는 대부분 부품이 전자기기일 정도로 항공우주 분야는 현재 국내 산업 기반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며 “민간 기업들도 우주산업에서 미래 먹거리를 찾기 위한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30년 뒤에는 적도 부근의 배 위에서 로켓을 조립해 바로 쏘는 바다 발사까지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우리가 잘하고 있는 조선기술을 항공과 결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원장은 속도전으로 밀어붙여서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노벨상 수상을 위해 연구소를 만드는 등 젊은 과학자들에게 자꾸 부담을 주는데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며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하루아침에 대박을 터뜨린 것처럼 노벨상도 그렇게 와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승조 원장의 단골집  사리원


과일·채소로 맛낸 불고기 일품



사리원은 창업주 고(故) 구분임 씨가 1930년대 문을 연 후 3대째 이어온 불고기 전문점이다. 상호인 사리원은 창업주의 고향인 황해도 사리원에서 따온 것이다. 당뇨병에 걸린 남편을 위해 설탕과 조미료 대신 과일과 채소 등으로만 단맛을 낸 소스로 불고기를 만든 게 출발점이다. 구씨의 며느리 현순옥 씨는 파인애플, 오렌지, 키위, 샐러드 등 소스에 들어가는 과일과 채소를 다양화했다. 사리원은 20년 거래처인 광주광역시와 강원도 횡성에서 고기를 가져오는 등 소스 못지않게 고기 관리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사리원은 1970년대 서울 동숭동에서 1990년대 도곡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0년에는 창업주의 손자 나성윤 사장이 서초사리원을 오픈했다. 나 사장은 와인셀러를 만드는 등 불고기와 와인을 결합해 서초사리원을 특화시키고 있다.

점심에는 육수불고기와 식사(냉면 또는 된장찌개)를 함께 주는 불고기세트(2만6000원, 부가세 별도)를 먹을 수 있다. 저녁 메뉴는 사리원불고기(1인분 3만원), 육수불고기(1인분 2만3000원), 등심(1인분 4만6000원), 냉면(9000원) 등이다.(02)3474-5005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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